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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황남대총 발굴 전 연습으로 삽질이 시작됐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세상을 들끓게 할 만큼 놀라웠다. 신라 문화의 화려한 보물창고가 태양을 본 것은 천년 만이었다.


우선 천마총은 고분이 어떻게 지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충실한 사례다. 먼저 땅이 고르고 목은 약 40cm 깊이로 파서 어른 크기의 개울석을 깔고, 분지 밑바닥에 진흙을 깔아 15cm 정도의 밑동을 형성했다. 그 위에 가로 50㎝, 높이 40㎝의 개울석을 얹어 일종의 대좌를 만들었는데, 그 위에 동서 6.6m, 남북 4.2m, 높이 2m의 목벽을 세웠다. 목벽이 결국 땅에 깔리는 셈이다. 목벽 위와 주변에 지름 23.6m, 높이 7.5m의 돌을 쌓은 뒤 20cm 두께의 점토를 발라 물이 안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했다.


상자 안에는 길이 2.15mm1m의 목관이 동서로 놓여 있고, 동쪽 끝에서 50cm 떨어진 곳에 길이 1.8mm1mm0.8m의 장물 목궤가 놓여 있었다. 출토된 장신구들의 유물은 모두 순금이었고, 확인할 수 있는 말마구는 드물었다.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볼 때,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반까지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특히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은 경주 시내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등에서 출토된 금관보다 크고 고급스러웠다.


또 자작나무(말이 달릴 때 흙이 튀는 것을 막는 말마구)로 만든 말타기에 그려진 것으로 보아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것은 신라시대의 회화와 예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물리적 자료다.


목관 안에는 금띠와 금관이 들어 있었다. 각각 둥근 고리 자루가 달린 금팔찌와 은팔찌 한 쌍이 손목에 놓여 있었고, 손가락마다 금반지가 달린 몸뚱이가 놓여 있었다. 물론 이것은 옛 신라 시대의 생활상을 통찰하는 중요한 원천이다.